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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작가 미상, 독일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일대기

by me_re_log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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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2020

 

진실한 모든 것은 아름답다


영화는 1937년 드레스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독일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드레스덴에 살고 있는 쿠르트의 아버지는 나치의 입당을 거부한 양심적인 교사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살고 있던 집 마저 빼앗기며 궁지에 몰리게 되지요. 쿠르트의 이모 엘리자베트는 어린 쿠르트를 데리고 나치 당국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찍힌 작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다녀오거나, 여러대의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으며 희열을 느끼고, 쿠르트가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계속해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린 조카를 향해 진실한 모든 것은 아름다우며, 그것으로부터 절대 눈길을 돌리지 말 것을 당부하죠. 엘리자베트는 알몸으로 피아노를 치다가 급기야 유리그릇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며 피를 흘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가게 됩니다. 의사는 엘리자베트에게 조현병과 청년기의 망상증세라는 진단을 내리면서 입원을 권유합니다. 또한 유전병의 흐름을 추적하는 보건 당국에 엘리자베트의 사례를 보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딸을 입원시키지 말고 치료해 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뒤로 하고 의사는 곧바로 엘리자베트의 병적 증세를 보건 당국에 신고합니다. 엘리자베트는 그 길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고, 어린 쿠르트는 눈을 돌리지 않고 끌려가는 이모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나치 정권은 선천적 유전병을 지니고 있는 기형아와 정신지체자, 성적 소수자 등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말살 대상으로 선포하였고, 나치의 지령을 받은 산부인과 의사 카를 제반트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엘리자베트 역시 그 대상이었지요. 1945년 미영연합군으로 인해 드레스덴은 폭격을 맞고 엘리자베트의 오빠들은 전사하였으며, 엘리자베트를 비롯해 수용시설에 수감된 여성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1945년 독일이 패전하여 항복을 선언한 날 카를 제반트는 나치 전범으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교도소의 책임자인 소령 아내의 출산을 도와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며 이것을 계기로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부인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나치에 입당했다가 패전 후 교사로서의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 쿠르트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계단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쿠르트는 간판을 제작하는 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그러나 쿠르트의 예술적 재능을 간파한 공장사장은 쿠르트에게 미술학교에 입학할 것을 적극 권유합니다. 그렇게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학교에서는 공산주의의 사상에 입각해 인민노동자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그림만을 교육합니다. 쿠르트는 학교에서 자신의 죽은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패션과 여학생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연인관계로 발전합니다. 연인관계임을 감추고 엘리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는 쿠르트. 하지만 엘리는 카를 제반트의 딸이었습니다. 카를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나치의 정책에 동조했던 전적을 감추며 여전히 존경받는 산부인과 의사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요. 한편 쿠르트는 학교에서 미술실력을 인정받아 교수로부터 역사박물관의 벽화를 그릴 것을 추천받았으나,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예술가의 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수의 청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엘리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생긴 쿠르트는 교수의 부탁을 받아들여 다시 벽화를 그리기로 결정합니다. 산부인과 의사답게 딸의 임신을 먼저 알아챈 카를은 쿠르트의 열성한 유전자를 자신의 자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엘리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속이며 딸에게 낙태수술을 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와 쿠르트는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되고, 쿠르트는 사회주의 체제에 동조하는 홍보미술가로서의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는 진실한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살았던 쿠르트는 끝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망명을 감행하며 아방가르드 미술의 근원지인 뒤셀도르프로 향합니다.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에 입학한 쿠르트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위미술을 행하는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되죠. 유행하는 작품들의 스타일들을 모사하며 방황하던 쿠르트는 안토니우스 판 페르텐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들이 모두 거짓된 것임을 깨닫고 이를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한편 패션을 전공했던 엘리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재봉사로 일을 시작합니다. 쿠르트와 엘리는 아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카를에 의한 강제 낙태수술로 인해 계속해서 아기를 유산하고 맙니다. 게다가 경제적 수입이 없는 사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카를은 쿠르트에게 자신이 아는 병원에서 계단 청소를 하는 일을 시키거나 여권발급 같은 허드렛일을 맡기며 수치심을 안겨주죠. 카를과 쿠르트가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중 나치의 안락사 정책의 주동자였던 부르크하르트 크롤이 체포되었다는 호외를 듣게 되고, 경찰에 체포된 크롤의 사진을 본 쿠르트는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작업의 방향성을 깨닫게 됩니다. 쿠르트는 신문의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그렸고, 이를 본 쿠르트의 동료는 이제는 추상회화의 시대라며 그를 타박합니다. 그러나 쿠르트는 주위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전개합니다. 쿠르트는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은 이모 엘리자베트와 함께 있는 자신의 유년시절 사진을 캔버스에 투사하여 일부러 그림을 흐릿하게 만들면서,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듯한 효과를 주었습니다. 여권을 찾으러 쿠르트의 작업실에 들른 카를은 엘리자베트의 사진을 보고 기겁하며 지난날의 과오가 떠올라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지요. 한편 엘리는 3개월이 지나도 유산을 하지 않고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고, 쿠르트는 미술학교의 친구이자 부호의 아들인 아드리안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엘리자베트와 자신을 찍은 사진을 가리켜 본인과 모친을 그린 작품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쿠르트는 누구를 그리는 지와 그리는 대상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중요치 않으며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진실한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이죠. 전시장에는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와 엘리가 함께 응원을 와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던 쿠르트는 종점지에 모여 있는 여러 대의 버스를 발견하고,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 희열을 느끼던 이모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쿠르트가 버스 기사들에게 자신을 향해 경적을 울려줄 수 있는 부탁을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가 미상>은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예술을 다룬 영화입니다. 실제로 리히터는 영화 속 쿠르트처럼 드레스덴 미술학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화풍을 배웠으며, 1961년 전위미술의 한복판인 뒤셀도르프로 이주하여 플럭서스와 팝 아트의 영향을 받은 '자본주의 리얼리스트 그룹'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리히터의 초기 작품은 사진을 차용한 포토 저널리즘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으나 그 이후에는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양식을 전개했습니다. 인물사진 외에도 풍경사진을 이용한 극사실적 풍경화와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이기도 하였지요. 무엇보다 그는 독일의 역사적 사건과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들을 합치하여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데 탁월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추상화가 득세했던 1960년대 미술 동향 가운데서 사진이라는 구상적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흐릿한 붓질을 더하여 추상의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새로운 양식을 선보이기도 했지요. 또한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퍼포먼스, 개념미술 일색이던 동시대의 유행과 흐름에 부합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리히터의 작품세계는 전통적인 장르로서의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 환기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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